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난 3주와 마찬가지로 당분간 저희는 글을 통해 말씀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글의 유익

저에게 매일 글을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듯이, 여러분들에게도 매일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답답하시지는 않으신가요? 하지만 글로 내용을 주고받는 것에는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글과 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532년 11월 16일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마주쳤습니다.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의 병력은 8만이었고, 피사로의 병력은 168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피사로는 자신에게 인사하러 나온 아타우알파를 습격해서 인질로 삼았습니다. 이후 8개월 동안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인질로 삼아서 많은 몸값을 뜯어냈습니다.

아타우알파가 피사로에게 잡힌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문자의 유무에서 발생한 정보력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는 스페인 사람이 남아메리카 온 목적과 스페인 군사력의 수준에 무지했습니다. 아타우알파가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 가진 정보는 매우 부정확했습니다. 하지만 피사로는 문자를 통해 이전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어떻게 정복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사로는 코르테스의 작전을 모방했고, 동일하게 성공했습니다.”『Guns, Germs, and Steel』(New York: Brockman, 1997), 김진준 역, 『총, 균, 쇠』(서울; 문학사상사, 1998), 참조: 92-113.>

위의 사례처럼 문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입말과 비교해서 문자가 몇 가지 큰 장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문자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만나지 못하더라도, 문자는 시공간을 넘어서 이런저런 내용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입말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문자는 많은 내용과 보다 복잡한 논리를 정확하고 자세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서 모여서 말씀을 들을 때는 모르는 내용이 나오거나, 논리적인 비약을 발견한다고 해서 깊이 생각해서 따져볼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 다음 내용이 연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보고, 듣기에 익숙한 사람은 논리를 따지지 않게 됩니다. “따져 무엇하나! 당장 은혜만 받으면 그만이지!”라는 식입니다. 그런 믿음의 태도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나름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수십 년 설교를 들어도 구원 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십일조는 어떤 이유로 해야 하는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작용입니다. 이 정도 수준에서는 교회 내부 사람끼리 통용되는 기본적인 논리로 서로를 권면할 수는 있겠지만, 믿음이 어린 신자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의 방법, 십일조, 공동체 생활, 주를 위해 사는 삶 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거나 변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 글을 읽는 사람은 글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논리를 체득하게 됩니다. 글을 읽다가 전에는 애매하고 모호하게 이해했던 주제들이 선명하게 이해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글은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논리를 가르치고, 사고하는 연습을 하게 만듭니다. 글을 매일 읽다 보면, 기본적인 복음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특히 일전에 썼던 로마서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복음의 논리가 성도 내면에 정확하게 자리 잡아야만, 신앙생활을 세상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건전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신앙의 기본적인 논리들을 탄탄히 배울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글을 통해 받는 감동이 모여서 예배할 때의 감동과 같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배운다는 관점에서 이 기회를 선용한다면, 공동체 전체와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차차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런 유익을 누리기 위해서 어려움을 넘어야 합니다. 문자는 독자에게 기본적인 문해력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요구합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의지와 힘을 써야하는 일입니다.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 엉성하게 글을 쓰거나 문장이 깔끔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글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고난도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저도, 읽는 여러분도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앉아서 예배를 드릴 때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논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예배에 녹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을 때에는 생각해야 하고, 논리를 따라가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힘을 들여서 글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 기회도 서로 잘 쓰면 좋겠습니다.

2) 묵상 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

대가(大家)의 작품들은 공통된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주제가 쉽고 분명합니다. 누구나 쉽게 주제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둘째, 쉬워 보이는 작품을 탐구하려고 접근하기 시작하면, 독자는 작품의 숨겨진 깊이에 압도되어버립니다. 『모나리자』를 생각해본다면,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은 미소에 매혹당합니다. 진정한 예술품은 사람의 영혼을 만지는 법이기에 설령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혹당하는 것입니다. 모나리자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미소입니다. 하지만 ‘미소’에 매혹된 사람이 “이 그림에서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다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을 알게 됩니다. 그 미소를 표현하기 위해 다 비치가 부은 시간과 노력, 세심한 기법들을 알게 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음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복음의 주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무엇인가? 구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왜 믿어야만 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믿음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탐구하는 사람에게 복음은 쉽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깊이 있는 것인지를 점진적으로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명료하면서, 그 어떤 지혜자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묵상 글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애초에 한계를 지닙니다. 이 점을 꼭 이해하시고 글을 읽으셔야 합니다. 중요한 본질을 잊어버린 채, 묵상 글을 매일 읽고 삶에 적용하면, 율법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역시 장편소설이야말로 내 주된 전쟁터고 나의 작가로서의 특질, 본연의 맛 같은 것은 거기에 가장 명확히 - 아마도 가장 좋은 형태로 -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원래부터 장거리 주자 체질이라서 다양한 것들이 제대로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움직이자면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시간과 거리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로 비유하자면 상당히 긴 활주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SHOKUGYO TOSHITE NO SHOSETSUKA(Tokyo: The Sakai Agency and Eric Yang Agency, 2015), 양윤옥 역,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서울: 현대문학, 2016), 144.)

저는 대개 40분 정도를 설교합니다. 묵상 글은 10분 정도 설교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설교가 장편소설이라면, 묵상 글은 단편소설과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 제 수준에서 제가 복음을 온전하게 언어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하루키의 말처럼, 긴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성도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말하고, 성도는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듣게 하고, 생명을 얻게 만든 후에 순종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대개 4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묵상 글은 설교와 달리 저에게 긴 활주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간단하게 글을 쓰게 됩니다. “스스로 굳게 하십시오. 열심히 하십시오. 노력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견디십시오.” 간단한 묵상은 성도에게 말씀을 따라 실천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장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충분히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을 강조할 시간과 지면이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율법주의로 전락할 위험을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힘만으로 스스로를 굳게 할 수 있다면, 열심히 할 수 있다면, 노력할 수 있다면, 순종할 수 있다면, 기도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욱 의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어떤 선한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주셔서, 우리를 굳게 하시고, 열심히 하게 하시고, 노력하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견디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강하게 붙들어야 하는 진리는 “성령께서 지금도 내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갈 3:5) 헬라어로 ‘행하시는’는 현재분사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우리 안에서 능력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순종의 아래에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묵상 글을 쓸 때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전부 행하신다는 식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순종하고 적용할 내용이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길게 늘여 써서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능력의 한계이고, 그렇게 글이 길어지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상 글을 읽으실 때는 ‘반드시’ 지금 내 안에서 능력으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기억하시면서, 읽고 적용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제 순종하지 못했고, 오늘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를 ‘지금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면서 ‘순종하라’는 글을 읽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