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은 단지 죽음 이후를 위로하기 위한 교리가 아닙니다. 부활은 “언젠가 천국에 간다”는 약속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새롭게 규정하는 능력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은, 오늘의 두려움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권력 앞에서, 다수의 선택 앞에서 신앙을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부활의 확신에서 나옵니다. 순교자들이 두려움보다 신앙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두려움 없이 산다.” 그 믿음은 상황을 바꾸기 전에 먼저 사람을 바꿉니다. 계산보다 순종을 선택하게 하고, 안전보다 진리를 붙들게 하며, 침묵보다 고백의 삶으로 이끕니다. 순교자들은 부활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생애로 보여주었습니다.
부활절 아침 우리는 자연스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정말 부활을 믿고 있는가? 그 믿음은 단지 머리로 동의하는 신앙인가, 아니면 나의 선택과 태도, 삶의 방향을 실제로 바꾸고 있는 믿음인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오늘의 삶에서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순교자들의 신앙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그 선택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주기철 목사님은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말은 죽음을 미화하거나 고난을 영웅적으로 포장하려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진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한 사람의 담담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를 선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그 선택을 끝까지 지켜낼 것인가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죽음은 목적이 아니었고, 부활 신앙에 대한 순종의 결과였을 뿐입니다.